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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경화 걸린 송전망…전력대란 경고등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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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발전소・재생E 설비 속속 구축…못 따라가는 전력망
정부・지자체・한전 유기적 협력 위해 특별법 조속히 제정해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따라 동해안 원자력 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들이 완공되고,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설비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를 생산해도 보내지 못하는 송전 제약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더욱이 앞으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데이터센터 등 산업계에서의 전력수요가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력망의 대규모 증설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전력이 전력망 구축을 단독으로 수행하고 있어 사업 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망 건설은 지역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준공이 늦춰지기 일쑤다. 여기에 정부 재정지원 없이 전력망 건설의 모든 과정을 주도하는 한전은 누적부채가 200조원에 달해 전력망 구축을 위한 안정적인 재원 마련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 지는 모습이다.
문제는 앞으로 대규모 신규 발전소들이 준공돼 가동하는 것은 물론, 재생에너지도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전력 수급 사정이 빠듯한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 대규모 정전(블랙아웃)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전력수급 위해 대규모 발전소 구축했지만…송전선로 구축은 차일피일
수도권의 전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해안 지역 대규모 발전기들이 완공을 속속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낼 송전망 건설은 지지부진 하기 만하다. 한전은 당초 동해안에서 수도권에 이르는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2021년에 완공하기로 했으나 주민 반대 등의 이유로 이 시기를 2026년까지 미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11년 순환정전 사건을 계기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동해안 권역에서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다수의 신규 발전사업을 허가했다. 그 결과 삼척블루파워, 강릉에코파워, 신한울 원전 1·2호기 등 대규모 신규 발전소들이 가동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이들 발전용량은 총 7GW에 달한다. 기존 가동 중인 한울 원전 1∼6호기, GS동해전력, 삼척그린파워에 더해 앞으로 추가될 신한울 3·4호기 원전까지 합하면 총 17GW가 넘는다.
이에 산업부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송변전설비를 적기에 안정적으로 확충할 수 있도록 하고, 설비 준공 지연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사업은 수년간 지연돼왔다. 정부는 2020년 9차 계획에서는 입장을 변경, 동해안 신규송전선로 준공시기를 당초 2021년 12월 내지 2022년 12월에서 2025년 6월 내지 2026년 6월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마저도 착공이 지연돼 최근 사업이 가까스로 추진됐다.
호남과 제주 지역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확대에도 지역 간 송전선로가 부족해 송전 제약 및 계통 불안정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제주도는 출력제어가 일상화됐으며 올해 들어 육지에서도 원자력·재생에너지의 출력제어가 수차례 발생했다.
실제로 호남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2020년 6.2GW, 2021년 8.4GW, 2022년 9.8GW, 2023년 9월 10.4GW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호남과 타 지역을 연결하는 송전선로는 345kV 신옥천~세종, 345kV 청양~신탕정 등 2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에너지안보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필두로 한 에너지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COP28에서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원전 3배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공동선언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송전망 구축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국내 송전선로 건설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건설 지연의 핵심 원인은 낮은 주민·지자체 수용성 및 갈등관리 체계 미비에 있다. 최근 송·변전설비에 대한 수용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건설 초기단계부터 지연이 발생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지방자치제가 본격화하면서 주민 반대에 따른 인허가 지연 등 지자체 역시 비협조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기에 송전선로가 거치는 지자체들 간 갈등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특히 한전 단독으로 건설의 모든 과정을 수행하고 있어 갈등 관리에 미흡한 점 역시 송전선로 건설을 지연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345kV급 이상 대용량 전력망은 국가 핵심 인프라이지만 갈등 관리 거버넌스가 존재하지 않아 관련 주체 간 이해관계 조정에 한계를 겪고 있다.
전력망 건설과 관련해 지원제도가 미비한 점 또한 송전망 구축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2014년 밀양사태를 계기로 송전설비주변법이 제정됐지만 지역망 보상 제외, 보상단가 정체 등으로 주민 수용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는 안 돼…정부, 전력계통 혁신대책 구축
전국적으로 송전망 구축이 갈수록 어려워짐에 따라 정부는 전력 계통 구축이 제때 이뤄질 수 있는 전력계통 혁신대책을 마련했다.
민간 기업의 참여, 주민 수용성 등을 추진해 국내 송전망 건설 기간을 30%까지 줄이는 한편 새로운 전력망 질서를 구축하고, 유연하고 안정적인 전력계통 시스템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정부는 전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발전 시설이 몰린 동해안·호남 등을 연결해줄 송전망을 적기에 건설한다는 목표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가로축’ 전력망인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은 예정대로 2026년까지 준공할 계획이다. 정부는 전담팀을 가동하고 인허가 신속 협의 등도 진행하기로 했다.
남북을 잇는 ‘세로축’을 맡는 서해안 HVDC 건설도 2036년 준공 목표로 본격 착수한다. 호남의 원전·신재생 발전력을 해저를 통해 직접 수도권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육상 건설 시 예상되는 주민 반대 등을 줄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서해안 HVDC TF 구성 ▲경과지 선정 ▲사업모델 개발 ▲기술 확보 등을 추진한다. 총비용은 7조9000억원, 수송 능력은 8GW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HVDC 건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송전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민간의 건설 참여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설계·시공 부문에만 민간이 참여했으나 설계·시공과 함께 용지확보와 인허가까지 포괄하는 턴키 계약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건설 이후 민간이 운영권까지 갖는 철도, 도로 등의 사회간접자본(SOC)과는 달리 HVDC 건설 후에는 한전에 설비를 귀속시키고 운영도 한전이 수행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오는 2026년 6월까지 동해안 발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는 동해안-수도권 HVDC 건설도 추진한다. 동해안 지역에는 원전과 화력발전소 등 대규모 발전 설비가 밀집해 있지만 송전선로가 부족해 발전에 제약이 있었다. 특히 신한울 3·4호기(2.8GW) 신규 원전 생산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려면 송전선로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동부 140㎞·서부 90㎞(1단계)와 양평·하남 50㎞(2단계)에 이르는 국내 최장 육상 HVDC를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송전선로 건설 기간(345kV 기준)을 평균 13년에서 9.3년으로 30% 단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전력망 건설 기간을 단축시켜 줄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도 적극 추진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이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특별법이 제정될 경우 범정부 차원의 확충위원회가 신설돼 입지 문제나 주민 갈등 등의 조정을 주도할 수 있다. 토지주에 대한 조기 합의 장려금, 보상선택제 같은 ‘맞춤형 보상제’ 도입도 가능해진다.
확충위원회는 입지 선정과 준공 등 건설 사업 관리뿐만 아니라 갈등·분쟁 조정 및 중재 등에 대한 심의·의결 권한을 갖게 될 전망이다. 정부 주도로 전력망을 철도·고속도로 등과 공동 개발하고 인허가 특례와 파격적인 보상책으로 공정 기간을 127개월(최장 211개월)에서 101개월(최장 110개월)로 2년 2개월 단축한다는 복안이다.
경유지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수요자 맞춤형 보상 제도도 도입된다. 토지주에 대해 감정가를 웃도는 조기합의 장려금을 주고 일시 수령 또는 분할 수령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원 대상의 연간 지원 단가를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자체·주민 참여형 지역망 확충체계도 도입하기로 했다.
지자체 참여를 통해 154kV급 이하 지역 내 전력망 확충계획을 수립하고, 2014년 이후 정체된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대상, 단가 등도 조정 검토하기로 했다.
여기에 송·변전설비와 도로·철도 공동건설을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속도 제고를 위한 송전사업자의 건설방식을 다양화하는 등 새로운 개념의 전력망 건설 모델도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계통 포화 대응을 위해 신규 발전 허가도 속도 조절에 나선다. 계통포화 변전소(154kV 이상)에 연계되는 송·배전망에 접속 신청하는 모든 새로운 발전사업 신청에 대한 사업 허가를 제한한다.
포화 변전소 밀집, 출력제어 상시 발생 등 계통현안 발생지역을 ‘계통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지역 맞춤형 계통 대책도 구축한다. 계통특별관리지역의 계통 여건을 반영한 맞춤형 허가 추진, 시간대별 발전량 패턴을 반영한 유연한 계통연계 방법 역시 마련한다.
전력망 지속 확충은 불가능한 점을 고려해 기존 설비 이용 효율화를 추진한다. 전력망 알박기 개선을 위한 발전사업자 관리를 강화한다. 올해부터 허수 전기 사용자 선별을 위한 전기공급 신청 요건의 문턱을 높이기로 했다.
태양광 발전의 확대로 앞으로 봄·가을철 전력공급이 과잉돼 출력을 제어하는 사례가 지속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전력공급 과잉 대응 체계’도 제도화한다. 봄·가을철 경부하기 대책 수립을 정례화하고, 하향예비력 체계를 도입한다. 출력제어 운영 기준도 명확하게 세울 방침이다.
재생에너지를 제어 가능한 자원으로 구축하도록 하는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도 도입한다. 올해 2월 제주를 시작으로 2025년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유연성을 주는 발전원에 대해 인센티브도 부여한다. 구체적으로 예비력을 거래하는 실시간·보조서비스시장이나 출력제어 등 서비스를 거래하는 신보조서비스 시장 등이 검토되고 있다
◆송전망 문제 해결 위해 특별법 신속히 제정돼야…전기요금 현실화도 요구
전문가들은 정부의 전력망 확충 대책들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되는 한편 법안에 확실한 주민보상체계 등 다양한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돼야 한다고 있을 모은다. 또 한전의 경영난 극복을 위해 전기요금 정상화도 시급하다고 전한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실시계획 승인을 받은 사업에 대해선 인허가 의제나 환경영향평가 등 특례를 인정하면 소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 이 과정에서 국민의 재산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차별화되고 적절한 보상과 지원책이 담겨야 한다”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건설 주체인 한전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소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특별법이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입지를 선정할 때 하나의 경로만 특정하지 말고, 여러 경로를 제안하고 경쟁시켜 비용과 시간적인 측면에서 전력망 구축을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 소외된 지역도 보호하는 방향으로 특별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병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특별법의 핵심은 범부처를 아우르는 국무총리 산하의 전력망위원회의 구성이며, 이를 실무적으로 지원할 기획단 신설에 있다”면서 “송전망 건설과 계통보강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국가적 차원에서 꼭 필요한 사안이란 인식 아래 정부와 여야가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되도록 적극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전의 부채가 심각한 가운데 전력망 구축을 위한 대규모 투자비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박 변호사는 “전기위원회나 에너지규제위원회의 독립성은 전력산업의 정상화를 위한 당연한 전제”라면서 “전기요금을 승인할 때 우리나라는 총괄원가에 대한 보상이 전제돼야 하는데, 물가당국이나 정치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미국에서는 이 원칙이 거의 헌법 수준으로 여겨진다. 요금 규제를 하더라도 사업자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투자비는 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2036년까지 설비투자비가 56조5000억원을 넘는다. 원가를 고려하지 않은 현재의 왜곡된 전기요금 체제에선 미래 투자를 논의하기 어렵다”면서 “유럽이나 미국은 송전망 투자비에 필요한 요금을 분리 고지한다. 우리도 전기요금을 고지할 때 송전망 투자비를 따로 고지하는 식으로 국민에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고 전했다.
출처 : 전기신문(https://www.electimes.com)